류준열 X 이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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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수, 30, 심리상담가


태어나 단 한번도 축복받지 못한 삶.

그가 여자의 뱃속에서 막 자라기 시작했을 그 무렵부터, 그에게는 꼬리표처럼 온갖 소문들이 뒤따랐다. 몸 파는 여자의 아이. 부잣집 첩의 아이. 혹은 강간 피해자가 낳은 아이. 무엇 하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 속에서, 여자는 아이를 낳은 그날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안은 채로.

여자는 죽었고, 아이는 살아남았다. 아이를 거둔 여자의 엄마는 살아남은 아이에게 자신의 딸과 똑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너는 목숨이 참 질긴 아이구나. 네 어미의 몫까지 네가 짊어지고 살아라. 그러나 여자의 목숨을 빼앗고 여자의 이름을 가진 아이를 보며, 여자의 엄마는 점점 미쳐갔다.

저주와 불행, 끊임없는 소문들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체념에 가까운 삶. 그는 그저 주어졌으므로 살아 숨쉬었다. 낳아준 이를 원망해본 적도, 살아있음을 후회한 적도 없었다. 그는 딱 주어진 만큼만 살았다. 웃지도, 울지도 않고. 그를 안쓰러워하던 그의 이모가 그를 다시 거둔 덕에, 그는 열 다섯이 되어서야 겨우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불행을 먹고 자라던 아이는 타인의 불행을 안아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에 갔고, 거기서 해인을 만났다. 해사하게 웃는 얼굴. 웃는다는 건 저런 거구나. 그는 처음으로 해인을 따라 밝게 웃었다. 해인은 불행하고 어두운 삶에 위안이 되는 빛이었고, 빛은 곧 사랑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묻어두었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가 품은 조금 다른 사랑. 빛을 탐내는 어둠. 그는 그것이 드러났을 때 들이닥칠 결과를 알았다.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조용히, 그저 옆에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10년을 지냈다.

아이는 시간이 흘러 자신이 꿈꾸던 어른이 되었다. 바람대로 그는 타인의 불행을 안아주고 마음에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었으나, 정작 자신의 마음은 어찌 할 줄 몰랐다. 평생을 견디고 받아들이며 살아온 삶이라, 이 마음도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요즘 자꾸, 해인의 눈을 보는 것이 힘들다. 연애 안하냐는 해인의 물음에 웃어넘기기가 더 이상 힘들 때쯤, 해인이 말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고. 이제는 이 마음을, 끝내야 할 것 같다.




정해인, 30, 간호사


해인의 부모는 고아원을 운영했다. 부모는 고아원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작 해인에게 소홀한 것에 미안해했다. 그래도 해인은 늘 괜찮았고, 또 양보했다. 그래서 해인은 부모의 자랑이었다. 스스로 잘 하는 기특한 아들. 욕심내지 않는 착한 아들. 어느 순간 양보와 혼자가 점점 당연해지자 해인은 조금 서운했지만, 언제까지나 부모의 자랑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어디서나 늘 밝게 웃었고, 누구에게든 다정했다.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니까.

해인은 간호사가 되고싶었다. 남을 위하는 숭고한 삶. 해인이 생각하는 간호사란 그런 것이었다. 의사가 되기를 원하던 그의 부모는 갈수록 아쉬운 소리가 커져갔다. 네가 의대에 갔더라면. 태어나 처음 부모와 부딪혔다. 해인은 혼란스러웠다. 엄마 아빠의 자랑이 되고 싶었는데. 견고하던 마음에 작은 균열이 일었다. 작은 균열들이 모여 점점 커졌고, 그만큼 해인은 지쳐갔다. 다 그만 둘까 봐. 잘못 온 길인 것 같아. 푸념 섞인 짜증을 뱉었을 때, 조용히 들어주던 지수가 얘기했다. 너 잘하고 있어. 짧은 한마디는 의외로 마음의 균열들을 채워주었다. 그때부터 해인은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지수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부모님 일도, 실습 얘기도, 연애상담도. 지수는 늘 들어주었고, 그래서 늘 의지가 되는 친구였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고, 해인은 자신이 꿈꾸던 그런 사람이 되어갔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겠노라 다짐했다. 아이야,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의 자랑이란다.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늘 그렇듯 지수에게 이야기했다. , 결혼하고 싶은 사람 생겼어. 그런데, 단단하게 서있던 지수가 자꾸 위태로워 보인다. 해인은 지수가 그랬듯 자신도 그의 버팀목이 되고 싶었다. 다 괜찮으니까, 얘기해봐.

자꾸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어쩐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그런 예감. 예감은 곧 현실이 되었고, 그는 그 감당할 수 없음에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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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나 수업가야돼. 빨리 얘기해."


"나 이따 소개팅 가는데, 옷좀 골라주라"


"이게 진짜.."


"아 제발. 응? 맛있는거 사줄게 갔다와서. 응?"






"윤지수, 내가 진짜 고마운거 알지."


"... 고마우면 잘해 새끼야."







"해인아. 나, 너 좋아해. 많이."

"...."

"너는 늘 나한테 고맙다고 말하지만, 나는 늘 네가 고마웠어.

나는... 그냥 어쩔 수 없이 살았거든. 내가 사는건 그저, 엄마의 목숨값이다. 그렇게 살았는데.

니덕에 처음으로, 살아있다는게 감사했어.

죽을때까지 말 안하려고 했거든. 그렇게라도 옆에 있고 싶었으니까. 이러면, 안되는거 아니까.

근데, 마음을... 더이상 감당할 수가 없네. 미안하다. 이제와서 이러는거. 미안해."







'아니라고 말해. 장난치는거라고 말해!!!!'


축복받지 못했으나 후회한적 없던 삶.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이 순간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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